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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선거]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실패의 정치학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7-01-04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실패의 정치학

 

*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음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진보하여 왔는가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의 대답이 있다. 우상향하는 그래프의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진보하기만 해왔다는 것이 첫 번째 대답이고 계단식 그래프의 모양으로 한동안 같은 상태가 지속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 단계 급격한 진보를 보이는 패턴이었다는 것이 두 번째 대답, 작게 보면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였지만 크게 보면 우상향하는 그래프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것이 세 번째 대답이다. 나는 세 번째 대답이 우리가 살아 온 지난 역사와 가장 유사하다고 믿는다.
 
트럼프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난 후 버락 오바마는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지나 온 길은 결코 곧게 뻗기만 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갈팡질팡하며 걷기도 하였고, 때로는 누군가는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후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정치란 게 가끔 그래요” 모두가 알다시피 오바마는 트럼프의 적대수였던 힐러리를 지지했다. 실패의 순간 좌절된 기대를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말 중 하나가 무엇인지를 오바마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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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포스터 / 출처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얼마 전 마블 사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았다. 나는 영화관에 어떤 영화가 상영 중인지 찾아보는 편이 아니다. 입소문이 나서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면 보러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런 영화들 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추천이유는 세 가지였다. ‘마블 사에서 새로운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온다’, ‘재밌다’

 

나는 셜록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에 대해 크게 관심이 있지 않았고 꼭 재밌는 영화라야만 가치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러 간 이유는 새로운 히어로 영화라고 해서였다. 나는 키덜트가 아니다. ‘시빌 워’가 내가 처음 본 어벤져스 시리즈 영화였다. 먼젓번 영화를 보지 않아도 후속편을 보는 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키덜트인 어벤져스 마니아 친구에게 설명을 들어야하는 부분이 약간은 있었다.

 

아마 어벤져스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보러 가게 될 것 같았고 나중에 ‘저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나’하며 영화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닥터 스트레인지’를 봐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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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스틸컷 / 출처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닥터 스트레인지’는 한 마디로 새로운 영웅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에 대한 영화였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에 비해 ‘영웅의 탄생’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실질적으로 닥터 스트레인지가 악당에 맞서 싸우는 액션 신은 많지 않았다.

 

사실 악당 자체의 출연비중이 적었다. 영화가 끝날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까지 악당과의 대적이 크게 진전되지 않아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악을 잡는 데 실패하고 세계가 위험에 빠진 상태에서 후속편이 제작되나 보다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영화에서 악당이 엄청나게 위협적이진 않은 존재로 그려졌다면 악당과의 대적이 크게 비중이 없었어도 마지막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악을 상대로 이기는 모습이 개연성이 떨어져보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 세계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악당을 그려놓는 바람에 ‘그 위협적인 악당을 초짜 히어로가 너무 쉽게 이겨버리는 거 아닌가’ 싶어 고개를 조금 갸웃하게 만드는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꽤나 잘 짜인 영화였다.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실패를 통해서다. 

 

스트레인지는 잘 나가는 의사였다. 동료 의사들보다 실력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이었고 명망 있는 의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하며 손의 신경이 손상을 입게 되고 자신의 의사로서의 삶은 완전히 끝장나버렸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한다.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아보지만 가망이 없다는 걸 스트레인지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다 전혀 가망이 없던 신경 손상 환자가 완치된 경우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환자를 찾아간다. 환자가 말하는 회복의 비결은 영험한 힘이었다. 그렇게 찾아 간 외진 나라에서 스트레인지는 마법사인 ‘에이션트 원’을 만나게 되고 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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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스틸컷 / 출처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처음에 스트레인지는 좀처럼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스승의 도움으로 한 번 깨우침을 얻고 나자 스트레인지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그와 동시에 ‘늙지 않는’ 스승에 대한 의심도 커진다. 스승에 대한 의심은 에이션트 원이 처음부터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영특하지만 자만심이 강했던 에이션트 원의 제자 케실리우스는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어감에 따라 스승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잘못된 유혹에 빠져버린다. 지구를 자신의 세계로 만들고자 하는 악당 도르마무가 제시한 영생을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버린 것이다.

 

케실리우스에게서 보였던 자만심이 스트레인지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본 에이션트 원은 한편으로 걱정하지만 자신의 끝이 보이는 만큼 후계자를 생각해야했고 스트레인지에게서 보이는 마법사로서의 잠재력이 그녀에게 필요했다.

 

스승의 걱정대로 스트레인지는 자만심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자신의 뛰어난 면모만을 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스트레인지에게 에이션트 원의 존재를 알려 줬던 환자는 스트레인지가 거절했던 환자였다. 가망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교통사고를 당할 당시 스트레인지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맡을 환자를 고르는 통화였다. 스트레인지는 0.1%의 확률만 있다면 기꺼이 환자를 맡을 의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명성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서 가망도 있는 환자만을 골라서 받는 의사였다. 실패의 확률을 어느 정도 원천적으로 차단해놓고 시작하니 스트레인지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고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스트레인지는 의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타고나기도 했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뛰어나도 한계는 당연히 있었을텐데 그 한계를 시험해보려 하질 않으니 실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스트레인지가 가지고 있는 자만심의 기저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실패에 대해 스트레인지가 가지는 두려움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계속 뛰어난 사람일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스승마저 케실리우스에게 죽음을 맞고 스트레인지는 도르마무에 대적할 힘이 없다. 스트레인지는 그만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스트레인지는 도르마무를 끝내 지구에서 밀어낸다. 끊임없이 패배함으로써였다. 스트레인지는 훈련 과정에서 시간을 조절하는 마법을 익혔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마법이라 그 마법이 이후에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경고되긴 하지만 도르마무가 이미 지구를 삼켜버린 상태에서 스트레인지가 생각해낼 수 있는 방도는 그 뿐이었다. 스트레인지는 도르마무를 찾아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같은 시간을 반복한다.

 

그 시간은 스트레인지가 도르마무를 찾아가 도르마무에게 패배하는 시간이다. 스트레인지는 자신이 도르마무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애초에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거래를 하러 왔다’고만 말할 뿐이다. 도르마무는 계속해서 스트레인지를 이기지만 스트레인지는 같은 시간을 반복해 끊임없이 도르마무에게 거래를 하러 온다.

 

도르마무는 스트레인지에게 이 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너는 끊임없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스트레인지는 대답한다. “알아. 하지만 너 역시도 이 시간 속에 갇히게 되지.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지만 너에게 질 수는 있어” 결국 도르마무는 스트레인지의 거래를 받아들이고 지구에서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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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스틸컷 / 출처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케실리우스와 달리 스트레인지의 자만심은 왜 극복이 가능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영화에서 생략되어 있다. 스승의 죽음을 겪으며 스트레인지가 각성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스트레인지는 스승의 죽음 이전부터 확실히 케실리우스와는 구별되는 인물이었다.

 

지구에 마법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지구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끼고 나는 손을 치료하러 왔을 뿐 지구를 지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스트레인지는 행동을 하였다. 물론 자신이 살기 위해서 싸워야하기도 했겠지만 나는 내 손만 고치면 된다는 소시민적 태도가 그리 강해보이진 않았다.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케실리우스의 말에도 크게 혹하는 듯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스트레인지가 충분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스트레인지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애초에 선택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쉬움도 있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럼에도 꽤나 감명 있는 영화였다. 영웅은 실패를 초월할 때 탄생한다는 가르침을 준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면서도 누군가는 우리가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였고 누군가는 우리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 누군가의 우려와는 달리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았던 적도 있지만 누군가의 우려대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도 했다. 현재로 오는 길목에는 성공도 있었지만 실패도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가 번갈아 이뤄지면서도 인류는 결국 진보하였고 이전보다 나아졌다. 성공만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게 아니다. 실패를 통해서도 사람은 나아진다. 오히려 역사는 성공보다 실패에 주목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 있는 많은 제도, 법률, 문화 등은 모두 과거의 실패에서 유인된 것들이다.

 

실패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실패는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사건이 인류의 성공인지 실패인지 섣불리 단언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건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다. 실패를 어떻게 초월하느냐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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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dr2017010400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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