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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선거역사] 허를 찌른 제시 벤추라의 기행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8-22

 

<프레데터>라는 영화가 있었다. 외계에서 온 괴력의 생물체와 인간들의 사투를 그린 액션영화다. 근육질 액션 스타의 대명사이자 터미네이터 캐릭터로 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맡았다.

 

이후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정계에 진출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는 또 한 명의 미래의 주지사가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주인공 더치 소령(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부하 블레인 역을 맡았던 제시 벤추라가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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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레데터’에 출연한 제시 벤추라의 모습. (이미지 출처-20세기 폭스)>

 

 

극중의 블레인은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방불케 하는 덩치를 지닌 분대 중화기 사수였다. 담배를 질겅질겅 씹다가 뱉어내는 터프한 인상에 미니건이라고 불리는 M134 같은 중화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덩치 좋은 군인 블레인 역의 제시 벤추라는 배우 이전 다양한 경력이 있었다.

 

우선 그는 실제로 세계 최강의 특공대라는 미국 해군 네이비씰 대원으로 활약한 군인이었으며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프로레슬러로 명성을 떨쳤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은퇴한 뒤로는 레슬링 해설자로도 활약했다.

 

영화배우나 가수 등 연예계 스타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미국에서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우 꽤 유명한 헐리웃 배우 출신이고 함께 <프레데터>에 출연한 아놀드도 이미 그렇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는 정치적으로 매우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소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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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해설자로 활약한 제시 벤추라. (이미지 출처-THE SPORTSTER)>

 

 

우선 그는 속된 말로 ‘말발’이 서는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쇼이며, 붐 업을 위한 온갖 장치들이 마련된 버라이어티쇼였던 프로레슬링에서 그는 입심으로 한몫 보는 법을 배웠다. 레슬링 실력보다는 오히려 입심으로 더 유명했다. 이를테면 프로레슬링 시합 전에 벌어지는 기자회견 대결.

 

“프로레슬러들의 기자회견이라는 것은 상대편을 어떻게 요리하겠다는 따위의 무시무시한 겁을 줌으로써 관중을 불러 모으는 일종의 쇼라고 할 수 있는데 벤추라는 바로 그런 면에서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다.” (미국사 산책 14, 세계화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 중) 해설자로도 활약했는데 또 그때까지의 관례나 금기 모두를 깨뜨리는 거침없는 해설로 이름을 떨쳤다.

 

은퇴 이후 그는 특유의 입심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그가 살던 브루클린파크의 시정(市政)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을 퍼붓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그의 발언에 통쾌해했고 기성 정치인들은 불쾌해 했지만 그 어느 쪽이든 1990년 11월 벤추라가 브루클린파크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가 실제로 당선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벤추라는 덜컥 시장에 당선돼 버렸다. 그것도 18년 장기집권을 해 온 기존 시장을 거꾸러뜨린 쾌거였다.

 

거기까지인 줄 알았던 벤추라의 질주는 계속됐다. 1998년 그는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가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경쟁 후보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정치가 만만해 보여도 분수가 있지, 어딜 프로레슬링 해설이나 하던 사람이 주지사를 꿈꾸며 자기들에게 맞선단 말인가 싶었을 것이다. 거기다 벤추라의 정당은 전통의 공화당과 민주당도 아니었다.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세운 제3의 정당 개혁당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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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Esquire)

 

 

작은 시에서야 시민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힘을 발휘할 수 있고, 프로레슬링에서의 인기가 표로 이어지는 일도 가능했겠지만 여느 국가보다도 더 강력할 수 있는 미합중국의 한 주의 정치적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입심과 지명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 벤추라는 또 하나의 ‘소통 방식’을 개발한다. 바로 그 방식의 핵심은 인터넷이었다.

 

홈페이지 jesseventura.org 를 통해 지지자와 의견 교환을 나누는 혁신적 시도를 했다. 벤추라는 단순히 일방적으로 정보제공을 하는데 머무르기보다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유권자를 움직이는 최초의 사례를 제시했다. 더구나 기성정치인이 아닌 프로레슬러라는 비정치인으로 만드는 과정에 홈페이지가 활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됐다.

 

벤추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보한 3천명의 지지자들에게 투표일 3일전에 이메일을 보내 주 전역에서 동시 개최한 지지결의대회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벤추라 인형을 판매하여 정치자금을 모금했다.

 

‘인터넷은 기술이 아닌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승리한 것이다.’ (홈페이지 관리자였던 메드센의 증언)” (민주주의의 기술, 조희정, 한국학술정보) 3일전의 이메일이 연결되고 확산되면서 그는 승리했던 것이다.

 

즉 그의 당선은 단지 그때까지 그가 쌓아올린 얼굴과 이름팔이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과 홍보의 결과였던 것이다. 단돈 6백 달러를 들여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선거 경비를 해결하고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인 일은 돈 잔치로 얼룩진 공화 민주 양당 체제의 기성 정치권의 허를 완전히 찔러 버린 신의 한 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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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the Guardian)

 

 

벤추라의 당선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로스 페로가 주창한 제3정당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동시에 불안한 눈길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민주당과 공화당을 벗어나 제3의 정당후보가 주지사로 나선 곳은 메인주와 미네소타주 2곳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추라의 기존의 인기,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신규 전략으로 난국을 돌파한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에서는 “단지 벤추라이기 때문에 그를 찍었다”는 유권자가 12%에 이를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그의 ‘세금동결과 로비자금 없는 정치 실현’ 등 약간은 이상적인 공약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미네소타 주의 경제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았기 때문에 벤추라의 다소 허황한 언설이 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치인의 약속 치고 허황되지 않은 것이 있던가?

 

193㎝ 체중 118㎏을 뽐내는 이 전직 프로 레슬러가 당선되자 워싱턴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이 사태를 두고 정치가 웃음거리가 됐다고 개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를 통해 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시 벤추라는 또 한 번의 기행으로 자신에게 의혹을 품은 사람이든 기대를 보이는 사람이든 양쪽 다를 까무라치게 만든다. 1999년 1월 16일 미네소타 주지사 취임식에서 그는 관용 리무진 대신 대형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그 복장은 프로레슬러 복장이었다. 왕년의 별명이었던 ‘덩치’ (the body)를 과시하면서 그는 부르짖었다. “자 한 번 놀아보자고!” 예상 밖 인물의, 예상 밖 인물에 의한, 예상 밖 인물을 위한 날이었다고나 할까.

 

 

필진 : 김형민 PD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 전공인 국사와 세계사를 틈틈히 공부해 SNS와 블로그에 '산하의 오역'이란 제목으로 역사관련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모은 글을 엮어 '그들이 살았던 오늘'의 제목으로 책을 냈다. 현재 sbscnbc에서 PD로 활동 중이다.

첨부파일 : bj20160818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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