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텔링

HOME > 알림 > 스토리 텔링 > 스토리 텔링
좋아요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프린트

[IF History] 만약 프랑스 대혁명 때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7-09-01

 

 

<편집자주 : 역사와 관련한 논쟁이 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어. 역만없 몰라?" 맞습니다. 과거의 일, 사건을 나타내는 역사에는 가정을 붙일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인터스텔라를 제외하면 말이죠.

하지만 역사에 만약을 넣어 상상을 해볼까요?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었던 "프랑스 대혁명". 만약 이 프랑스 대혁명에서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소집하고 이후 부르주아계층의 의견을 받아 국민투표, 선거를 실시했다면 프랑스 대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또,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를 볼 때, 만약 일본과 합병한다는 조약을 국민투표에 부쳤다면, 그 결과 반대하는 표가 많이 나왔다면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 "국민투표가 있었다는 식으로 역사를 재해석한, 'If History'" 속으로 떠나볼까요?>

 

 

[IF History] 만약 프랑스 대혁명 때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관련이미지1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출처: Pixabay)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나와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인 관용의 정신, '톨레랑스'는 프랑스만의 독특한 정신인데요. 이 프랑스의 톨레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나왔으며, 근현대 프랑스의 민주정치 체계도 프랑스 대혁명에서 출발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전 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왕정에 대항해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일어선 혁명인데요. 프랑스 대혁명은 시민혁명으로써 유럽의 민주주의를 심어줬으며, 전 세계 헌법의 근간을 마련한 '프랑스 인권 선언'이 프랑스 혁명 중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IF History] 만약 프랑스 대혁명 때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관련이미지2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신개선문 전경 (출처: Pixabay)

 

 

프랑스 대혁명은 1614년 이후 160년 넘게 열리지 않던 삼부회가 1789년 5월 5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회되면서 시작됩니다. 삼부회는 제1신분, 제2신분, 제3신분이 한데 모여 열리는 프랑스의 회의였는데요. 여기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제1, 2신분은 신분별로 나뉘어 투표를 하는 부별투표를 주장했지만, 제3신분은 모두가 한 표씩 동등하게 행사하는 두별투표를 주장했습니다. 결국 1789년 6월 13일, 제3신분의 평민의원들은 국민의회를 결성하게 되는데요. 이후 7월에는 '헌법 제정의회'로 명칭을 바꾸고, 국민들이 바라던 헌법과 의회정치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IF History] 만약 프랑스 대혁명 때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관련이미지3 

삼부회 소집 당시를 재현한 삽화. (출처: Pixabay)

 

 

여기서 루이 16세를 비롯한 기득권층은 국경지대에 있던 군대를 불러들여 베르사유 주변에 집결시켰는데요. 7월 14일, 만 명이 넘는 시민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막이 올랐습니다. 진압을 위해 달려온 군대도 시민의 열기에 쉽사리 손을 쓰지 못하면서 결국 프랑스 전역에 농민봉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IF History] 만약 프랑스 대혁명 때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관련이미지4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을 묘사한 삽화. (출처: Pixabay)

 


이후 헌법제정의회는 1789년 8월 26일, "프랑스 인권 선언"을 발표하는데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라는 문서로 소개된 프랑스 인권 선언은 제1조에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라고 명시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일보시켰습니다. 또한 프랑스 인권 선언은 세계 각국의 헌법과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혼란했던 프랑스 대혁명 초기. '만약' 루이 16세와 기득권층이 제3 신분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부회를 소집했을 때 1인 1표 원칙인 "두별투표"로 과세 협상을 벌였다면 어땠을까요? 먼저 삼부회에서 결정한 뒤, 이를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거로 결정했다면 아마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피를 흘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영국의 '명예혁명'과 같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혁명'으로 기록될지도 모르죠.

 

 

 

[IF History] 만약 프랑스 대혁명 때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관련이미지6 

(프랑스 인권 선언문. 출처:Pixabay)

 


국민의 대표들이 간접적으로 결정하는 간접선거 대신,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선거를 채택했다면 아마도 프랑스의 역사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고 만약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민주주의 투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투표로 행사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If History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저는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민주주의 투쟁 속에서 태어난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꽃 '선거'와 한 표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명예기자 조수연 

 

 

첨부파일 : 1asas12122121.png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들을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담당부서와 사전 협의 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만족도

평가하기

- 담당부서 : 홍보과 / 02-503-2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