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텔링

HOME > 알림 > 스토리 텔링 > 스토리 텔링
좋아요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프린트

[오늘의 선거역사]아르헨티나 민주 정치의 상징, ‘라울 알폰신’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2-01

아르헨티나 민주 정치의 상징, ‘라울 알폰신

 

 

굵직한 스포츠 행사가 정권의 치적 홍보용이나 독재자의 위엄 과시용으로 전락한 것이 어디 한 두 번일까마는 1978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검은 월드컵’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군부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 197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그는 그 이후 지속된 ‘더러운 전쟁’ 즉, 반대파들에 대한 잔인한 숙청과 고문, 학살의 총지휘자였다. 그의 치세에 실종된 이들만 해도 최대 3만명을 헤아리는데 죽이다 못해 나중에는 마취제를 놓고 비행기에 태워서는 대서양에 내던지기까지 했다니 가히 상상을 절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비델라의 월드컵 유치 목적은 간단했다. ‘축구(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정치적 관심 소멸’

 

 

 

<호르헤 비델라 / 출처 : 위키피디아>

 


처음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은 군 장성이긴 했지만 비델라와는 껄끄러운 사이였다. 비델라는 컬러 티비의 전면 송출 (아르헨티나 국내외 모두)을 원했는데 조직위원장은 그를 거부했다. 이윽고 조직위원장은 ‘좌익 게릴라’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 그 뒤를 이어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는 비델라의 심복이었다.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임무는 단 한 가지였다. “어떻게든 우승”이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결승전을 목전에 두긴 했으나 아르헨티나는 결승에 진출하려면 페루팀을 네 골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다. 이때부터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부당거래’가 이뤄진다. 아르헨티나는 급거 페루에 곡물 수만 톤과 수천만 달러의 현금을 ‘원조’하게 되고 페루팀 골키퍼로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가 전격 기용되는가 하면, 페루의 공격수들은 유난히 헛발질을 벌이고 최종 수비수가 공격진에 가세하는 희한한 포메이션을 보이게 된다. 결과는 6대0이었다.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도 심판진은 아르헨티나의 열 두 번째 선수 노릇을 톡톡히 했고 결국 3대 1로 아르헨티나는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 출처 : 위키피디아>

 


호르헤 비델라가 환호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월드컵 제패로 아르헨티나의 국내외 사정이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군부는 이번엔 축구 아닌 진짜 전쟁을 결행하게 된다. 바로 영국과의 포클랜드 분쟁이었다.

 

1982년 아르헨티나 군부는 자신들이 말비나스 섬이라고 부르는 포클랜드를 공격하여 점령한다. 그러나 아무리 쇠퇴했다고 해도 영국은 강국이었다. 영국은 국력을 기울여 (앤드류 왕자까지 참전)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남대서양의 포클랜드를 되찾았다. 아르헨티나 군은 곧 영국에 손을 들었고 이 치욕적인 패배는 군부에게 레드 카드를 안겨 주었다. 당시 군부 출신의 갈티에리 대통령은 비뇨네에게 대통령직을 넘기고 물러섰으나 시쳇말로 ‘삽질’에 가까운 전쟁을 벌인 군부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수만 명의 국민들을 학살하는 ‘더러운 전쟁’을 벌였던 군부는 퇴진하고 민주적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굵게 새겨질 그날은 1983년 10월 30일이었다.

 

1983년 10월 30일 치러진 총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1880년 창단된 아르헨티나의 가장 오래된 정당인, 급진당 (Union Civica Radical) 후보 라울 알폰신이었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투옥 경험도 있었던 그가 당선되자 불안해진 군부는 당연히 그들 나름의 보신책을 강구한다. 1983년 9월 비뇨네 과도정부는 ‘국민화해법’을 통과시킨다. 군사정권 시절에 해당하는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자행된 모든 정치 범죄에 대해 사면령을 내린 셈이었다. 또 알폰신이 당선된 뒤 그에게 이를 수용하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라울 알폰신 /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러나 알폰신은 대통령 취임 후 이를 무효화하고 대통령 소속 ‘전국실종자위원회’를 설치했다.  ‘더러운 전쟁’ 당시 군부가 소리소문 없이 끌고 가 없애 버려 시신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수만 명의 행적이 조금이나마 밝혀진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영화 <오피셜 스토리>는 자신의 양녀가 군부에 의해 죽음을 당한 실종자들의 딸임을 알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심지어 실종자의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의 원수, 즉 군 장교들 가운데 불임 부부들에게 입양되는 어이없는 운명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알폰신이 집권한 6년은 이 참혹한 군부독재와 민주 정권을 잇는 위태로운 다리와도 같았다. 아직 발톱을 뽑아내지 않은 군부의 위협도 견뎌야 했고 군부독재 내내 짓밟히고 숨죽였던 국민적 욕구의 폭발도 감내해야 했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최고의 지도자를 제외한 하급자들이 상사의 명령에 따라 범죄를 저지른 경우 ‘기소최종 중지법’과 ‘정당복종 면책법’ 등으로 구제한 것은 군부와의 타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두 번이나 쿠데타를 기도했다. 또한 이미 구제 불능으로 전락한 경제난 해결 또한 알폰신에게 지워진 험난한 과제였다. 총파업이 일어난 것만 해도 열 세 차례, 인플레율은 3920퍼센트에 달했으니 그 어깨가 내려앉을 정도의 무게였을 것이다. 결국 임기를 마치기 6개월 전,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카를로스 메넴에게 정권을 조기 이양하고 퇴진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 출처 : www.fifa.com>

 


하지만 그의 통치 기간 중 아르헨티나는 정치 이외의 영역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기염을 토한다. 바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었다. 78년 월드컵에서 군부 독재의 온갖 공작과 매수와 위협을 통해 어거지로 월드컵을 차지하여 스스로도 자랑스럽지 못했던 아르헨티나였으나 이번에는 마라도나, 부루차가, 발다노 등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호화 멤버를 가동하여 왕년의 적국 잉글랜드를 물리치고 잉글랜드를 편들었던 독일을 결승에서 꺾고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독일의 콜 수상은 멕시코까지 불원천리 달려왔으나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 대통령 알폰신은 지척의 멕시코를 찾지 못하고 중계방송을 봐야 했다.

 

결과는 ‘펠레 스코어’ 3대2로 아르헨티나 승리.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열광했고 감격에 찬 알폰신은 우승 다음 날인 7월 1일을 임시 공휴일로 선포했다. 전쟁과 독재, 살인적인 경제난과 인플레 속에서 아르헨티나의 희망이 솟아오른 날이었다.

 

 

 

<라울 알폰신 / 출처 : http://www.raulalfonsin.com>

 


비록 대통령으로서 완벽한 임무 수행을 마치지는 못하였으나 2009년 알폰신이 사망했을 때 아르헨티나는 전국이 추모 분위기에 휩싸였다. 장례식이 거행되던 날, 스산한 날씨에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구가 안치된 국회의사당 앞에는 추모행렬이 20킬로미터에 달했다. 수만 명이 그 영구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6년간 격동의 아르헨티나를 다스렸던 정치인을 추모했다.

 


군부 통치의 죄악을 씻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그들의 준동을 막아 끝내 아르헨티나 민주 정치의 다리를 놓았고 경제적으로는 유능하지 못하였으되 결코 개인적 부패에 물들지 않았던 대통령으로서의 알폰신을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1983년 10월 30일 선거에서 당선된 라울 알폰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행한 감동적인 연설, “법치체제와 국민자유의 수호자로서의 전통을 회복할 것입니다.”를 부르짖으며 1853년 제정된 아르헨티나 헌법 전문을 읽어 내리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필진 : 김형민 PD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 전공인 국사와 세계사를 틈틈히 공부해 SNS와 블로그에 '산하의 오역'이란 제목으로 역사관련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모은 글을 엮어 '그들이 살았던 오늘'의 제목으로 책을 냈다. 현재 sbscnbc에서 PD로 활동 중이다.

 

정정당당스토리 바로가기(blog.nec.go.kr)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블로그 

 

첨부파일 : 20160201004.jpg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들을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담당부서와 사전 협의 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만족도

평가하기

- 담당부서 : 홍보과 / 02-503-2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