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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민주주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삼사(三司)제도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5-11-26

[역사 속 민주주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삼사(三司)제도

 

 

“현대 민주주의는 서구 역사발전의 산물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세계 최단시간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우리의 저력에는 우리 역사의 산물도 있지 않았을까? 왕권의 권위가 절대적인 조선왕조에도 절대권력을 견제하고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던 제도와 문화를 살펴보면서 우리 역사 속에 숨겨진 민주주의를 확인해본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권력이 독재로 흐를 경향을 보이면 그를 제지하고 권력의 남용을 막을 세력이 형성돼야 하며 포퓰리즘이나 중우정치(衆愚政治)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의 무절제한 욕망에도 선을 긋는 태도가 필요하다. 법을 만들고 실행하며 그 행위의 합법성을 판단하는 권력이 입법, 행정, 사법부로 분립되어 있는 것 역시 그 일환이며 '만장일치는 무효'라는 유대인들의 오랜 지혜 역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요체의 반영일 것이다. 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비단 근대 민주주의 국가뿐 아니라 봉건 왕국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예외가 아닐 뿐 아니라 대표적인 모범 사례에 해당한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바로 삼사(三司)제도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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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BS 클립뱅크 '5분사탐' 영상 발췌>

 

이 삼사는 한국사 시험의 단골 문제다. 같은 이름을 가진 고려시대 관청은 재정의 출납을 맡은 회계기관이었지만 조선시대에서는 전혀 다른 임무를 지닌 언론 기관인 세 관청을 가리키는 말로 바뀐다. 이 세 관청의 이름이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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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5호 강릉 오죽헌 이이(李珥) 율곡 영정 /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먼저 사헌부는 일종의 감찰기관이다. 오늘날의 감사원이나 검찰청이라고 할까. 관원들의 기강을 살피고 행정 집행 과정에서의 비리나 문제점을 '매의 눈'으로 감찰하고 허물이 발견되면 이를 공론화하는 것이 임무인 기관이었다. 역사상 굵직한 인물들이 이 직을 거쳐 갔다. 청백리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황희 정승은 대사헌 때에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세종실록에는 그가 승려로부터 황금 뇌물을 받아 '황금 대사헌'으로 기록된 사실이 남아 있다. 정통 성리학적 입장에서 개혁을 추구했던 중종조의 인물 조광조가 나이 38세에 대사헌이 됐을 때 훈구파 등 조광조의 정적은 공포에 떨었다. "저 융통성 없는 인물이 대사헌이라니!" 또 우리나라 돈 5천원짜리의 모델인 이율곡 선생도 대사헌 경험이 있었다. 이때 율곡은 "대사헌은 나라의 중요한 직임(職任)으로서,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데 그 책임이 있다."면서 옛 문헌에 자기 의견을 보태 풍속 교정 강령을 써서 붙이기도 해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출처 : EBS 클립뱅크 '5분사탐' 영상 발췌>  
<mbc 드라마 '동이' 발췌 / 출처 : mbc>

 

사간원은 글자 그대로 임금에게 말하는, 즉 간(諫)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기관이다. 임금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거나 나라에 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임금에게 이를 바로잡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사극 같은 데에서 줄지어 엎드려 "아니되옵니다!"를 부르짖는 신하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주축이 사간원과 사헌부다. 사간원의 관리를 간관(諫官)이라고 부르고, 사헌부의 관리를 줄여 대관(臺官)이라 부르는데 이 둘을 합쳐 대간이라고도 한다.

 

이 대간들은 왕이나 권력자들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 보려고 하면 대번에 눈 부릅뜨고 "아니되옵니다." 아니면 "대감이 이럴 수 있으시오니까." 호통을 쳐대니 말이다. 여기에 옥당(玉堂)이라 불리우는 홍문관이 추가된다.

 

 <창덕궁 '옥당(홍문관)'의 모습 /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출처 : EBS 클립뱅크 '5분사탐' 영상 발췌>

 

홍문관은 조선 세종 때 별처럼 빛나는 학사들을 모아 국책을 연구하고 한글을 만들어냈던 국왕의 자문 기관 집현전의 후신이다. 단종 복위를 시도한 집현전 학사들의 옥사 후 세조가 집현전을 폐지했고 성종이 홍문관으로 부활시켰으나, 이번엔 조선시대 왕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연산군에 의해 문이 닫히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홍문관은 중종반정 이후 복구돼 이후 내내 '언론 삼사'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 수장인 대제학의 경우 "대제학 하나와 열 정승 안 바꾼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문과 명망이 드높은 이에게 제수되는 것이 관례였고,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이나 사간원의 대표인 대사간보다 품계가 높았다. 홍문관은 사헌부와 사간원이 간쟁을 하다가 여의치 않을 때 최후에 가담하여 삼사합사(三司合司)로 나서는 일종의 '쐐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경복궁 '근정전' 전경>  

<영화 '광해' 스틸컷 / 출처 : CJ엔터테인먼트>

 

이 세 관청의 관원들이 일제히 엎드려 아니되옵니다를 합창할 경우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정승 판서는 물론이고 임금에게까지도 거침없이 들이대는 그들의 말(言)은 실로 권력자에게는 귀찮은 칡넝쿨이었고 거추장스러운 모래주머니였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 왕조의 지배층은 대체로 이들의 간쟁을 필요한 존재로 인정했고, 이들의 언로(言路)를 막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았다.

 

조선 성종 때 무관이었던 박원종을 승지로 임명했을 때, 이에 반발하여 올린 홍문관 부제학 안침의 상소는 언관에 대한 생각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무릇 의정부와 육조는 전하의 팔과 다리와 같은 것이고, 대간은 전하의 귀와 눈과 같은 것이며, 공의(公議)는 나라의 원기(元氣)와 같은 것입니다. 어떻게 팔과 다리를 버려두고 귀와 눈을 막으며 원기를 끊어버리고서 원수(元首)가 홀로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한국언론학보 53호, 조선왕조의 언론윤리 체계에 관한 시론- 이규완)


귀와 눈을 막으면 원기가 끊긴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신랄하고 시쳇말로 '버르장머리 없는' 간쟁이라 할지라도 쉽게 처벌하지 못했고 그 발언들의 원천이 어딘지를 알기 위해 "누구에게서 그 말을 들었는가?"라고 캐묻기도 어려웠다. 조선왕조는 그런 공론장을 제도적으로 갖춘 나라였고, 임금과 권신들 모두 간관들의 지칠 줄 모르는 비판에 귀를 막으면서도 그 자체를 폐하자고 나선 일은 조선 역사에 드물었다. 굳이 예외라면 "대간 역시 신하인데 꼭 임금으로 하여금 그 말을 다 듣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다면 권력이 위에 있지 않고 대간에 있는 것이다.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근원은 권력이 아래로 옮겨지는 데 있다."라고 일갈한 연산군 정도랄까.

 

물론 삼사의 폐단도 없지 않았다. 삼사 간에 선명성 경쟁이라도 벌이듯 목청을 돋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적지 않았고,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거나 그릇된 인식 위에서 공론을 오도하는 경우도 꽤 많았고 대간의 자리를 보장된 출세 코스로 이용한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이 삼사의 비판적 기능이 와해됐던 세도 정치 시대가 결국 조선을 빈털터리 속 빈 강정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망국으로 이어졌음을 기억한다면 비슷한 시기 태평양 건너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했던 말의 의미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언로가 막힌 정부는 눈과 귀를 틀어 막힌 사람처럼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가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비판을 외면하는 권력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면면히 유지돼 온 삼사제도가 주는 교훈이다.

 


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미디어과>

 

 

정정당당스토리 

 

첨부파일 : 2015112600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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