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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선거] 알스트로메리아를 아시나요?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5-11-09

[꽃과 선거] 알스트로메리아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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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집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다. 그녀의 명함에는 플로리스트(Florist)라 적혀 있다. 플로리스트란 플라워(Flower)와 아티스트(Artist)의 합성어 혹은 플로스(flos)와 전문가를 나타내는 접미사인 이스트(ist)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쪽이든 그녀에게 딱 맞다. 꽃을 배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간 그녀는 왕립원예협회의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식물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운동 ‘내셔널 가든 스킴(The National Garden Scheme)’ 활동 등에 열심히 참가했다. 세상을 뜨긴 했지만, 여전히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맥퀸의 쇼에서 꽃장식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국해 일반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를 연 것이다.
 
어느 날, 그녀가 꽃 하나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 당연히 알 턱이 없었다. 백합의 변종인가? 수선화의 한 종류인가? 우물거리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대부분은 몰라. 그런데 이 꽃 이름이 뭐냐고 묻는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어. 나는 자신이 구입하는 꽃 이름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 그런 고객들에게 꽃을 팔아야 한다는 게 힘들어.” 그녀가 들고 있던 꽃의 이름은 알스트로메리아(Alstromeri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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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만 되면 그녀의 꽃집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것이 11월의 일이기도 했거니와, 알스트로메리아가 11월이 제철인 귀한 꽃이기 때문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향하는 길목, 세상의 만물이 움츠러드는 이때 만날 수 있는 꽃은 그리 많지 않다. 개망초, 금계국, 루드베키아, 산국, 까마중, 해국 등이 겨울 초입에 핀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서 알스트로메리아는 가장 화려한 꽃 중의 꽃이다. 모든 꽃이 흐드러지는 봄부터 가을까지의 시기를 마다하고, 겨울 초입에 꽃을 피운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한 자연의 법칙이라면, 특히 알스트로메리아의 아름다운 자태는 꽃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아름답게 진화했다는 설을 믿게끔 한다.

 

주 자생지가 남아메리카인 알스트로메리아는 언뜻 백합이나 수선화와 빼닮아 ‘잉카의 백합’ 혹은 ‘페루 백합’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야리야리한 여인을 닮은 형태에 꽃잎의 끝 부분이 수채화의 붓 터치처럼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생육이 강해서 땅의 에너지가 강한 곳이라야 알스트로메리아를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습지, 사막, 열대우림, 고지대까지, 일반 꽃이 자라기 힘든 척박한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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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에서 피던 꽃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게 된 사연은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18세기 남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 스웨덴 선교사가 타향 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알스트로메리아를 보면서 이겨냈고, 귀국할 때 가지고 나온 알스트로메리아가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이 선교사의 이름이 바로 ‘알스트로메리아’였다. 한편, 식물의 학명을 라틴어 속명과 종명, 그리고 명명자로 표시하는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을 최초로 제창한 칼 폰 린네의 친구이자 탐험가였던 스웨덴 남작 클라우스 본 알스트로에메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가 1753년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면서 가져간 이 씨앗이 퍼져나갔다는 설이다.

 

선교사든 남작이든, 어쨌든 알스트로메리아의 이름은 스웨덴 사람의 그것이지만, 이 꽃은 유독 네덜란드에서 사랑을 받았다. 예로부터 네덜란드 사람들은 꽃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알스트로메리아가 유입되기 전인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한 뿌리가 집 세 채의 가격으로 거래할 정도로 튤립의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었다. 물론 ‘튤립 파동’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에 길이 남은 이 사건은 가격 폭락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이후 때아닌 튤립 열풍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눈여겨 본 꽃이 바로 알스트로메리아였다. 화훼 산업의 최강국인 네덜란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전남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알스트로메리아를 재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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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원은 11월의 꽃으로 알스트로메리아를 선정한 바 있다. 화이트스마일, 화이트크라운, 해피알스, 씨엔알스호프, 하늬바람 등 다섯 개의 품종이 개발, 생산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식적으로 알스트로메리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린다고 해도, 결국은 꽃을 꽃이라 불러 주고 곁에 두는 건 사람들의 몫이다. 어떤 훌륭한 정책도 정작 국민들이 외면하면 무용지물이듯 말이다. 보도 이후 알스트로메리아가 얼마나 생산되고 있는지, 판매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 궁금했던 차, 얼마 전 예식장에서 이 꽃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알스트로메리아의 꽃말은 새로운 만남, 헌신, 배려, 그리고 우정이다. 남남이었던 남녀가 서로를 배려하고 헌신하는, 우정과 같은 기나긴 사랑을 약속하는 공식적인 자리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이 꽃말은 다름 아닌 꽃의 생김새에서 비롯되었다. 알스트로메리아의 잎은 태생적으로 뒤틀려서 자라기 때문에 잎의 뒷면이 위쪽을 향하고 있다. 이 독특한 잎은 왜곡과 뒤틀림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성장할 수 있고, 비로소 우정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의 꽃말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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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스트로메리아의 의미심장한 꽃말은 비단 개인사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헌신과 배려로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믿음에 근거한 우정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로 요즘 유권자들이 정치인 혹은 정치에 가장 바라는 기본적인 미덕이 아닐까? 결혼이 ‘나’의 백년대계였다면, 정치는 ‘우리’의 백년대계일 테니 말이다.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삶으로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서로만을 바라보는 핑크빛 사랑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우정 같은 사랑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성숙한 정치 역시 이 꽃말처럼 내면의 단점과 아픔을 직시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올겨울 초입, 화려함 이면에 감추어진 속 깊은 정치에 대한 기대는 유난히 알스트로메리아를 곁에 두고 싶도록 만든다. 

 

글/ 윤혜정(컬럼니스트)

 

 

정정당당스토리 

 

첨부파일 : 201511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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