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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 톡] 보통사람이 만든 민주주의, 4·19 혁명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9-04-04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입니다. 법치국가는 법치주의에 의한 국가로써 행정은 법률에 따라 시행되며, 그 중에서도 법의 근본이 되는 헌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헌법엔 어떤 내용이 적혀있을까요. 헌법 전문을 살펴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헌법 캡쳐화면

대한민국 헌법 전문



헌법에서는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4.19민주이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사람. 즉, 일반 국민이 직접 장기 집권을 꿈꾸는 집단을 무너트리고, 민주주의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이 만든 민주주의 4.19 혁명은 3.15 부정선거에서 시작됩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은 유력했던 상대 후보인 신익희가 급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어부지리에 가깝게 당선하였고 심지어 부통령은 민주당 장면 후보가 당선되는 경험을 한 자유당은 정권유지에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선거가 실시되기 전 1959년 3월 내무부장관으로 취임한 최인규는 군수 및 경찰서장들과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비합법적인 비상수단을 사용하여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꼭 당선되도록 하라. 세계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 놓고 보아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 국가대업 수행을 위하여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 서장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라.”(국가기록원 자료)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은 이승만과 이기붕이 나섰는데, 1960년 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조병옥 후보도 사망하여 이승만의 재임은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부통령선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은 86세의 고령이었기에 부통령으로 반드시 이기붕을 앉혀야 했었습니다. 당시 헌법에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인데, 결국 자유당 정권은 계획하던 부정선거를 다음과 같이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1. 4할 사전투표 : 선거당일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전체 유권자 4할 정도의 표를 미리 자유당 지지표로 만들어 투표함에 넣어둠.


2. 3인조·5인조 공개투표 : 미리 짜둔 3인조·5인조 별로 조장을 두고 확인을 받은 후 투표하게 하고 이를 자유당 관계자에게 보여준 후 투표함에 투입


3. 완장부대 : 자유당 완장을 찬 사람들을 투표소 주변에 대기하게 하고 심리적인 압박을 주고 자유당에 투표하도록 유도


4. 야당 참관인 참관 방해 : 민주당 측 참관인을 매수하거나 여러 가지 사유를 붙여 투표소에 입장 못하도록 함.


5. 죽은 사람 선거인명부에 올리기 : 이미 사망한 사람을 선거인명부에 올림.


6. 올빼미표 : 일부러 투·개표소를 정전시킨 뒤 투표함을 바꿔치기 함.


7. 샌드위치 개표 : 다른 후보의 표 뭉치 위에 이기붕을 선택한 표를 한 장만 얹은 다음 이기붕의 표로 집계



어떠신지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황당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부정선거를 저질렀는데요.



결국 장면 후보가 180만, 이기붕 후보가 840만 표를 얻었다고 발표되자, 민심은 폭발했습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일반 시민들도 가세했습니다. 이들은 “불법선거 다시 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부정선거를 규탄했습니다.




4·19 혁명 당시,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 출처 : 국가기록원) 사진

4·19 혁명 당시,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 출처 : 국가기록원)



시위 도중 눈에 맞은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의 주검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고, 이후 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폭력배들에게 습격을 받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4월 19일, 3만 명이 넘는 대학생과 고등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후에는 초등학생과 대학교수들까지 시위대에 참여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민주주의를 위해 뛰쳐나왔습니다.


그렇게 4.19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월간 시사잡지이자 독재와 대립각을 세우며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사상계는 1960년 5월 호에 “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하며 4.19를 평가했습니다. 보통사람이 피흘려 이룩한 민주주의.



국립 4·19 민주묘지에 있는 기념탑 사진

국립 4·19 민주묘지에 있는 기념탑



보통사람이 만든 민주주의는 보통사람에 의해 정착되고 있습니다. 1987년 뜨거웠던 6월도, 모두 특정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아닌 보통사람, 국민이 주인공이었습니다.


보통사람의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 작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이 60%를 넘겼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들이 지켜왔던 민주주의에 너무 무관심했는지도 모릅니다. 2008년 제18대 총선의 투표율인 46%만 봐도 말이죠.


이제 더 이상 3.15 부정선거와 같은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는 않겠지만 보통사람이 만든 민주주의를 이제 보통사람인 우리가 온전히 지킬 때입니다.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피흘린 이들을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가꿔나가야 합니다. 보통사람인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 그 시작은 바로, ‘투표’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17기 선거명예기자단 조수연기자 gd8525g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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