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텔링

HOME > 알림 > 스토리 텔링 > 스토리 텔링
좋아요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프린트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1.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최초의 민주선거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8-11-28

 

 

이 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민주선거 70주년을 맞이하여 최초의 민주선거인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부터 2018년 제7회 동시지방선거까지의 우리나라 선거 역사를 정리해 발간한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이야기』,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18), p.18-22를 인용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1.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최초의 민주선거 이미지1 

 

 

최초의 민주선거

 

선거일   

선거인수

투표자수

투표율(%)

1948. 5. 10.(월)

7,840,871

7,487,649

95.5

 

 


1945년 8월 15일 독립을 맞이하였다. 독립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38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각각 주둔하면서 분단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반목으로 한국문제는 UN으로 이관되었고, 1948년 UN은 소총회를 열어 ‘가능한 지역’에서만 총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주선거인 ‘제헌국회의원선거’가 남한에서만 실시되었다. 최초 결정된 선거일은 5월 9일이었으나 그날이 일요일이라는 종교적 이유와 선거준비 때문에 5월 10일로 변경되었다.

 

5 ·10 총선거는 헌법 제정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200명의 의원을 선출하였고 임기는 2년이었다. 원래 300명을 선출할 방침이었지만, 북한지역은 선거가 불가능해 통일국가를 지향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북한지역 100석을 비워두었다.

 

지금과 달리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직접 선거인으로 등록해야 했다. 3월 30일부터 4월 9일까지 동사무소나 학교, 회사 등에서 선거인 등록을 실시했다. 등록한 유권자는 모두 784만여명이었다.

 

선거권은 만 21세 이상,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 모든 남녀 국민에게 부여됐다. 하지만 일본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았거나 일본 제국의회 의원이었던 사람은 선거권이 없었고 피선거권 역시 일제 때 판임관 이상의 경찰관,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위에 있던 사람, 고등관 3등급 이상인 사람 등에게는 주지 않았다.

 

선거구는 한 선거구에서 의원 한 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했다.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20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했는데, 48개 정당·사회단체와 무소속으로 모두 948명이 출마하였다.

 

특이하게도 무소속이 417명일 정도로 상당히 많이 출마하여 아직 정당정치가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선거를 관리하기 위해 국회선거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장은 대법원의 대법관이 임명되었다. 미군정에서 제정한 「국회의원선거법」에 따라 선거운동에 특별한 제한은 없었지만 공무원이나 선거 관계자 등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다.

 

미군정과 국회선거위원회에서는 처음 치러지는 보통선거에 익숙지 않은 국민들을 위해 대대적으로 선거 홍보를 시작하였다. 선거포스터를 제작하고, 선거인 등록과 투표 방법을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책자와 팸플릿을 배포하기도 했다.

 

산간벽지에는 미군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전단지를 살포하기도 했다. 선거표어도 모집했는데, ‘나는 집보고 어머니는 투표장’, ‘너도 한 표 나도 한 표 나라가 서는 한표’, ‘흩어진 우리 민족 투표로 뭉치자’ 등이 당선됐다. 또 선거일 전날부터 당일까지 시위는 물론 술까지 판매를 금지시켰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투표하지 말고 또렷한 정신으로 투표하자는 의미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태국이나 브라질은 현재에도 술 판매가 금지된다.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관련이미지3

 5 ·10 총선거 투표소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관련이미지4

 5 ·10 총선거 투표장면

 

 


새로운 역사의 시작,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민주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실시되었다. 선거는 전체적으로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남한만의 선거를 보이콧한 좌익들의 폭력투쟁과 미군정의 강경 대응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5.5%의 높은 투표율로 정부 수립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모두 198명의 제헌국회의원이 당선됐는데, 제주도에서 4·3 사건으로 선거가 무산되어 2명의 의원을 선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출하지 못한 제주지역 의원 2명은 1년 뒤 선출해 비로소 200명 정원의 제헌국회가 온전히 구성되었다.

 

총선거가 끝나고 5월 31일 최초로 국회가 개원해 의장에는 이승만, 부의장에는 신익희와 김동원이 선출되었다. 이후 국회는 7월 17일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을 공포하고, 20일 간접 선거를 통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 세계에 선포하였다.

 

 


민주선거 4대 원칙 도입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관련이미지6 

5 ·10 총선거 홍보포스터

 


이번 선거는 이제껏 한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민주선거였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둘 수 있다. 보통·평등·비밀·직접선거라는 4대 원칙이 모두 적용된 최초의 선거였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이 4대 원칙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1948년 당시의 정치상황, 특히 신생 독립국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이 아니라 ‘혁신’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조차 4대 원칙이 온전히 적용되기까지 100여 년의 선거역사를 거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첫 선거에서 4대 원칙을 도입했으니,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세계 여러 선진국에 뒤지지 않았다.

 

UN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없음에도 질서가 있고 민주선거의 이념을 실현했다”며 상당히 고무적으로 평가하였다. 또한 UN은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에서 대다수 한국인의 자유의사로 선출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결의했다.

 

무엇보다 이 선거는 수천 년 왕권국가에서 신민이었고,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의 피압박민족이었던 한국인들이 자신의 참정권을 공식적으로 행사한 첫 선거였다. 더불어 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공포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제도화에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 관련이미지8 

 

 

 

 

이종희 정치살롱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들을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담당부서와 사전 협의 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만족도

평가하기

- 담당부서 : 홍보과 / 02-503-2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