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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불가능에 맞선 멕시코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8-06-05

 

불가능에 맞선 멕시코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특별기고] 불가능에 맞선 멕시코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내에서 버젓이 살인 행각을 벌이는 멕시고 마약 카르텔들을 상대하기 위해 FBI는 물론 국내 문제에 개입할 수 없는 CIA 요원과 미군 특공대까지 투입되는 살벌한 작전을 뼈대로 한 영화다.

 

영화 <시카리오>에서 CIA 요원은 멕시코의 소노라 마약 카르텔 두목을 암살과 같은 비합법적 수단으로 제거하고 마약 거래선을 콜롬비아로 돌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항의하는 FBI 요원에게 CIA 요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세계 인구의 20%를 설득해서 마약을 끊게 할 수 없다면 질서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박멸이 불가능하다면 통제라도 해야 하며,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들은 통제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기고] 불가능에 맞선 멕시코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관련이미지2 

 

 


여기에 정치적인 혼란도 한 몫 했다. 1929년부터 2000년까지 멕시코를 지배했던 제도혁명당은 마약 밀매 조직을 눈 감아 주는 대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는 불안한 균형을 유지했으나 제도혁명당이 실각하면서 최소한의 통제선마저 무너져 버렸다. 카르텔들은 경쟁 조직은 물론 자신들의 돈벌이를 막는 공권력마저 서슴없이 공격하고 자신들을 비난하는 언론인들도 거침없이 죽였다.


멕시코 남부의 미초아칸 주. ‘초록빛 황금’이라고 불리는 열대 과일 아보카도의 주산지로 미국에 수출되는 아보카도의 대부분의 양을 공급하고 있는 곳이다. 동시에 마약 재배와 밀매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은 지역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여행 금지령을 내린 멕시코 내 5개 주 가운데 하나이며 마약 카르텔과 견디다 못한 시민들의 자경단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무법천지’의 슬픈 고장이다. 미초아칸 주의 소도시 티키체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특별기고] 불가능에 맞선 멕시코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관련이미지4 

 

 

 


2008년 티키체오 시장 선거가 있었다. 멕시코 제도혁명당 후보로 출마한 것은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라는 나이 서른 셋의 의사였다. 티키체오 출신이지만 마초아칸 주의 주도(州都)인 모렐리아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의 안락함보다는 험악한 정치인의 길을 택했고 2006년 이래 티키체오 시 의회 의장을 역임 중이었다. 당시 멕시코의 집권자는 펠리페 칼데론. 2006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멕시코 전역이 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약 재배의 최적지로 마약 카르텔의 이권의 중심에 놓여 있던 티키체오의 시장이란 화려한 영광은 커녕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물론 카르텔의 협박에 굴복하고 그들에게 협조한다면 막대한 부와 안락이 보장될 수도 있었겠지만.

 

 

 

[특별기고] 불가능에 맞선 멕시코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관련이미지5 

 

 

시장 당선 이후 당연하게도 카르텔은 마리아에게 접근했다. 자신들의 이권을 해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면 응분의 보상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떻게 될 것이라는 협박 또한 당연히 뒤따랐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뇌물을 일체 배격하고 마약 카르텔의 횡포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반 시민,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 곳곳을 누볐다. 그럴수록 마리아는 카르텔의 눈의 가시가 돼 갔다.   

 


2009년 10월 15일 마리아는 카르텔의 본격적인 습격을 받는다.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여행 중이었는데 전화를 걸기 위해 남편 호세 산체스가 차에서 내렸을 때 총성이 울렸다. 마리아는 남편에게로 달려갔지만 역시 총을 맞았다. 남편은 절명했으나 마리아는 살아남았다.

 

암살자들이 마리아가 죽은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참극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포기하지 않는다. “시장으로서의 임무를 기꺼이 계속 수행할 것입니다.”

 

2010년 그녀는 또 다시 암살 시도의 대상이 된다. 운행 중인 그녀의 차에 총격이 가해졌다. 운전기사와 언론사 기자 등 함께 있던 이들이 총상을 입었고 그녀의 몸에도 몇 발의 총알이 꽂힌다. 중상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자로서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흉측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은 자신의 몸을 언론에 공개하며 카르텔과의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상처 입어 망가진 제 몸을 공개합니다.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멕시코 연방 경찰의 밀착 경호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녀는 시장으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결연히 수행해 나간다. 자신과 가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배를 채울 빵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임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범죄 도시라는 오명으로부터 티키체오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별기고] 불가능에 맞선 멕시코의 여성 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관련이미지6 

 

 


카르텔의 영향력은 광범위했다. 마리아는 제도혁명당 (PRI) 소속이었음에도 PRI는 그녀를 지원하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마리아는 당적을 바꿔 민주혁명당 (PRD)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하지만 낙선하고 만다.

 

카리오 이 와중에 카르텔의 정치 공작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녀는 시장 임기 종료와 함께 정계에서 은퇴하고 세 아이의 어머니로 돌아가게 된다. 당연히 경호 업무도 종료됐다. 매우 신속하게,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도 그녀를 보호하지 않는 가운데 카르텔은 끝내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딸을 등교시키던 길에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는 차량을 가로막은 괴한들에 납치됐다. 2012년 11월 17일 마리아의 처참한 시신이 발견됐다.

 

자신과 가족의 희생을 무릅쓰고 카르텔로부터 고향 도시를 구해 내려던 한 여성 정치인은 비참하게 그러나 장렬하게 죽어갔다. 그녀의 죽음이 비록 암담하나 결코 무모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유언과도 같은 코멘트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자유는 책임을 수반합니다. 나는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의 기나긴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에 우리가 남긴 발자취는 우리가 패배했던 싸움, 그리고 그 싸움에 바쳤던 우리의 진실한 마음의 결과입니다.”

 

 

첨부파일 : 꾸미기_1222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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